오랜만에 들어와도 힐링되는 글과 사진들이 가득한 이곳, 그녀는 떠났지만 어딘가에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여기를 둘러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여길 오지 않는다고 그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여긴 유독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서.
배우 한소희나 고윤정을 보면 그녀가 생각난다. 본 적 없는 사람이나, 아마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너무 예쁠 사람이라서. 생김새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따뜻했던 그 사람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 배우들을 보며 그들도 잘 지내길 바라고 있다.
나의 우울은 지금 내게 사치다. 우울이 사치일 만큼 바닥을 쳐 본 사람들이 아니면 이 마음을 알 길 없다. 그렇기에 우울이 사치인 나에게 더 이상 남들의 질타를 들을 귀는 없다. 좋은 것만 듣고 나아가기에도 벅차다. 현실은 내가 더 잘 아니 나쁜 말은 거르고 나아갈 것이다.
이 모든 행보들이 바뀌길 바라며, 나 또한 바뀐 삶을 살길 바라며 오늘도 소망하고 기도해 본다. 아침부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이기적이지만, 가난한 자의 말을 들어주신다던 그 분에게 억지스러울 정도로 요구하고 있지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다시 나아가려 해본다.
요즘 모 기업의 연봉 수준 때문에 논란이 많은 것 같다. 그 기사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혀를 찬다. 기업들의 노동착취와 열정페이 논란은 끊임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연봉을 올린 적이 없다. 그 모 기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기업의 초봉이 그렇다.
아직 여건이 되지 않지만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또 기도한다. 오늘 기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만큼 간절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삶을 연장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어서 참 요구적인 기도가 많다. 그렇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 나를 다독인다.
한 번도 관심이 없고 문외한 장르인 클래식. 그런데, 요즘 클래식이 너무 하고 싶다. 악기를 하나 다루어 보고 싶기도 하다. 클래식이 귀에 들어오고 지루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좋은 연주자들의 영상을 보고 나니 귀가 황홀했다. 나도 저런 표현을 해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마음에 하나 자라났다.
최근 내가 무너져 내려서 그런지, 마음의 폭이 넓어진 덕인지, 내게 해로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에도 있었지만 끊어져 버린 인연들이었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하는데 좋은 이들이 모여 들다가 파리가 꼬여든 기분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에게서도 내가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나의 상황과 재정, 질병에 대한 치유와 보상은 모두 하나님께 애걸한다. 인간에게 의지할 수는 없으니. 이런 절박함을 가지고도 흔들리지 않고 남들을 이전처럼, 지금처럼 축복할 수 있기를. 미래에도 바뀌지 않길. 다만, 더 나은 마음으로 신에게 감사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만족함이 없는 이 갈증
내가 정말 못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비는 내 모습을 되짚어 보아도 형편에 맞지 않는 마음인 건가 싶어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중심을 잡고 사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채찍질 해야 하는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어쩌면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버리고 싶지 않다.
제발 나도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끝없이 채워달라는 애원 뿐인데, 이제 만족하니 믿음이 흔들리지 않겠단 그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견고하고 충분한 마음인지. 또 얼마나 부어주셨길래 그리도 감사한지. 내게도 그런 상황과 마음이 주어졌으면.
SNS릉 보다가 어떤 사람의 기도문을 읽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꾸미지도 않은, 그냥 흔한 글처럼 쓴 문장들이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하나님 저에게 더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합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