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나 덕분에 행복하시다면 그게 곧 내 행복이지. 그래서 선생님이 이 상을 어떤 마음으로 주시려고 했는지 알게 되니까 너무.. 기뻤다. 아래에서 빤히 올려다 본 선생님 눈빛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 나는 분명하게 안다. 나는 ‘선생님의 행복’을 상으로 받았던 거야.
입술에 행복이 닿았다.
숨 쉬어, 운아- 를 듣고서야 겨우 고개를 돌린다. 바쁜 호흡에 어깨가 들썩이는데, 볼을 크게 쓰다듬어 주시는 선생님 손이 따뜻해진 걸 알아차리고 조금 웃는다. 맞닿은 살갗이 서로 온기를 나누기에 충분했던 시간. 서툴렀을 텐데 어떡하지- 라는 미련한 걱정마저 선생님의 눈빛에 모두 사그라든다.
먹히는 꿈, 표현 그대로 잡아 먹히는 꿈이다. 천천히 몰아붙이시는 선생님. 턱인지 뒷목인지, 어딘가 단단히 붙잡힌 채 숨이 전부 뒤섞이기 시작해서. 가쁘고 벅차기 시작하지만 물러날 곳이 없고, 나는 입을 뗄 수도 어깨를 콩콩 두드릴 수도 없다. 상인데, 이거 분명 상인데 자꾸 앓는 소리만 나와.
꿈에 선생님이 나오셨고, 상을 주셨다. 처음 상을 받던 그 순간이 그대로 재현되는 꿈이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상. 입술 살살 문질러 주시는 것도, 눈 감으라고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것까지 다시 재생되는 꿈이었다. 눈 감기 직전에 힐끗 쳐다본 선생님은 옅게 웃고 계셨는데, 그것마저 똑같았다.
선생님만큼 몸이 서늘한 사람을 못 봤다.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실 때, 몸을 벌벌 떨 만큼 긴장하고 흥분했으면서도 ‘손이 이렇게 차가우셔서 어쩌지’하는 걱정이 스칠 정도였으니까. 턱을 잡고 당기시는 선생님 손도, 몸이 기우뚱- 해서 잠깐 붙잡은 선생님의 팔도 전부 서늘했던 감각.
연애를 할 때와 마음가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자각한 오늘. 성향을 인정하고 디엣도 이어가고 있지만, 내가 ‘성향자’라는 사실을 이렇게 생생하게 체감하는 건 여전히 신기하고 새롭다. 선생님을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가 앞으로도 더 안정적으로 자리잡길 바라는 마음.
뿌듯했어요.
조금 여유가 있으신 듯한 모습에 나도 살짝 긴장을 풀고 응석을 부려본다. 말 안 들을 거라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심하게 뻗대는 걸 가만히 들으시더니 굉장히 나긋한 목소리로 “말 들어~” 하시는 선생님. 웃으면서 겁주실 때마다 무서움+흥분 콜라보에 정신이 아찔하고, 아랫배가 자꾸 간질거린다.
‘운이’ 어디있냐고 여쭤보니까 옆에 있다고 하시는데,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 속마음이 투영되는 바람에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옆에 있어~”라고 다정히 얘기하시는 걸 듣자마자 세상 유치한 질투심이 팍 튀어오르고.. 내가 드린 선물이지만, 그 털뭉치 녀석이 너무 부럽다.
퇴근 후에 공부하다가 까무룩- 잠이 드신 선생님. 도중에 안 깨고 푹 주무셔야 하는데, 다시 눈이 떠졌다고 연락이 왔다. 당신의 표현처럼 ‘쓰러지듯이 기절’할 만큼 피곤한 나날임에도, 살풋 깬 잠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음에도.
짧게나마 연락을 보내주신 선생님의 마음을 한참 생각해 본다.
‘날 생각해서 한 행동’이라는 게 느껴질 때.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그 행동을 했을지가 궁금하다. 당신의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이 행동이 나오기까지, 과연 품이 얼마나 들었을지 재고 따지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냥, 잠결에 날 생각한 그 마음이 궁금해서.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일찍 자는 게 더 어렵다. “그래도 일찍 자야지?”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 선생님과 번번히 늦게 자는 나.. 이번 주부터 다시 도전해야지. 선생님이 바쁘신 동안에 좋은 습관 하나 뚝딱! 만들어 놓을 거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잘 지키고 있었어요- 라고 뿌듯하게 응석부려야지.
도보로 약 15분. 날이 좋을 때라면 몰라도 비가 오는 날의 15분은.. 세찬 비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도 내일은 다행히 선생님 출근 시간에는 비가 안 온다고 해서 안심이다. 다행이에요- 라고 냉큼 달려가서 소식을 전했더니 마냥 웃으시는 선생님. “운이가 일기예보네.”
칭찬은 언제나 기쁘지.
종일 비가 내리던 오늘.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공부하는 데에 보내고, 그나마 외출할 일이 있다면 그건 운동(러닝or헬스장)을 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바깥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그럼에도 매일같이 날씨를 신경쓰는 건 걸어서 출퇴근하는 선생님이 걱정되니까.
토요일에는 선생님의 전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상관없이 알람 소리가 아닌 선생님의 목소리에 잠을 깨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 비몽사몽에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으면 “응, 운아. 잘잤어?”라고 하시는데. 살짝 가라앉아 있지만 컨디션을 회복한 듯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목소리.
내가 교사를 준비하는 것도 큰 영향이 있겠지. 사회에서는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지낼 사람이 당신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제자일 뿐이라는 게. 상황이 반전되어 이제는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위치라는 게. 당신의 지시만을 얌전히 기다리며, 사회와의 반전에서 오는 쾌감에 몸을 떨게 된다.
상황과 관계없이 항상 당신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우리의 위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호칭으로 불러드리고 싶다. 호칭을 입에 올릴 때마다 나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서브의 자세니까.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이러한 조건들에 꼭 들어맞았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호칭을 바꾸어 부르는 것도 얼마든지 존중하지만, 나는 최대한 그러고 싶지 않았음을. 밖에서는 ‘오빠’라는 호칭을 허락해 주셨지만 굳이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칭 대신 시선을 맞추면 되니까. 옷소매를 조금 끌어 당기거나 고개를 돌려서 눈을 직접 바라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