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월에 김믽규는 야근이 많았음. 그날도 야근하고 늦게 퇴근해서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채로 엘베를 탔는데 저기 현관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인영에 열림 버튼 꾹 누르고 기다려줌. -감사합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술냄새. 허, 하고 웃은 믽규가 물어봄.
-전웑우. 술 마셨어? -네.. -술도 마시고 다 컸네 진짜? 사실 술이야 1월부터 마셨겠지. 아니면 혹시 몰라. 그 전부터? 근데 취한 모습은 처음 보니까.
뭔가 불만스러운 눈을 하고도 따질 힘도 없다는 듯이 구석에 서서 후... 하고 작게 숨 내쉬는 모습이 좀... 귀여움. 교복 입고 딱딱하게 굴 때보다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이 오히려 더 나이에 맞는 얼굴 같기도 하고.
-누구랑? 학교 애들? -네... 동기들... -원하던 학교 갔어? 네가 말을 안 해주니까 아무것도 모르잖아 나는. 엘리베이터는 5층, 6층, 웅웅거리면서 올라가고. -.....저 수시로 붙었어요.
웑우 말에 으엥? 하는 얼굴로 쳐다보니까 피식 웃더니, -무슨 어른이 저래... 마침 도착한 엘베 문이 열리고 또 고개 꾸벅 숙이고는 느릿느릿..
여전히 엘베 안에서 그거 지켜보던 믽규가 충동적으로 웑우를 불렀음. -웑우야! -? -잠깐만, 너 여기 잠깐만 기다려 봐. 너 그, 술 그렇게 마시고 그냥 자면 속 쓰려서 안 돼. 아저씨 말 들어. 잠깐만 여기 있어 금방 나올 테니까! 하고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믽규.
네가 커 봤자 얼마나 컸겠냐. 그래봤자 꼬맹이. 술 마시고 해장이나 할 줄은 알어? 이렇게 챙겨주는 이웃이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냉장고 뒤져서 안 깐 이온음료 찾아 들고 숙취해소제 몇 개 챙겨 대충 슬리퍼 끼워 신으면서 문을 열었는데,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벌써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복도. 들고 있던 숙취해소제가 좀 민망하네. 영양제 줄 땐 잘만 받아먹더니. 그땐 말도 잘 듣더니. 어른 됐다고 말도 안 듣고. 있지도 않은 자식 키워 봐야 다 소용 없다는 감상.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자꾸만 마주치는 둘. 새벽에 편의점 갈 때나 야근하고 들어올 때마다 5번이면 3번은 마주치는 것 같음. 그 사이에 웑우는 고딩 때랑 달리 제법 남자다워졌음. 여름이 지나면서 머리도 더 짧게 자르고, 운동을 다니나? 몸도..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속으로만 생각하지 겉으론 말 안 함. 생각해보니까 어쨌든 자기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던 앤데 혹시 민망하고 불편해서 저러나 싶어서. 이제 대학생도 됐고 나이 많은 아저씨한테 이상한 환상? 가질 때도 지났겠거니.
그러면 저같은 아저씨한테 좋아하니 마니 했던 게 좀 쪽팔릴 수도 있지. 자기도 옛날에 교생 선생님한테 두근거렸다가 나중에 이불 찬 적 있으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그냥저냥 이웃사촌으로 마주치면 대충 눈인사나 하는 사이.
근데 진짜 김믽규 회사일이 바빠도 너무 바쁨. 3월부터 시작된 야근이 여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음. 몇 달 동안 미친 업무에 시달리며 지금이 가을인지 벌써 겨울인지도 모르겠고. 걍 존나 추워. 밤 늦게 들어오니까 맨날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