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일본에서는 '유권술' 또는 '유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써왔을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데, 먼저 1909년 카노 지고로의 조카 카노 켄지가 복싱을 배우고 코베에 만든 '국제유권구락부'라는 도장명이 공식적으로 '유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카노 켄지를 비롯해 당시 일본에서서는 복싱 보급을 위해 유도와의 이종격투전을 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을 '유권시합'이라고 불렀다. 이후 순수한 복싱 경기 흥행을 '순권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즉, 유권은 '유도 vs 권투'라는 뜻이었다. (참고자료 blog.livedoor.jp/paraestra_week… )
마지막으로 주로 중국권법에 대하여 '강권'과 '유권'으로 구분하면서 '유권'을 내가권과 유사한 의미로 쓰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전일본유권연맹'이라는 대만 왕수금 노사 계열 태극권과 기공 등을 가르치는 단체가 있는데,
이 단체의 창립자인 지비키 히데미네 선생이 최용술 선생의 스승일 가능성이 거론되는 요시다 코타로 선생에게 대동류를 배우기도 한 인물이며, 대동류를 '일본의 유권'으로 칭하기도 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국내 모 합기도 서적에도 최용술 선생이 요시다 코타로 선생의 제자였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요시다 선생이 '유권'이라는 잡지 편집장이었다는 얘기가 실린 적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전일본유권연맹에 실린 지비키 선생 인터뷰 기사( taikyokuken.co.jp/goshin/story8.… )를 오역한 것으로 보인다.
'유권'은 현재 전일본유권연맹에서 발행하는 회지명이고, 지비키 선생이 팔광류의 오쿠야마 류호 선생이나 대동류의 호소노 츠네지로 선생, 요시다 코타로 선생을 찾아다닐 때 항상 동행했던 인물인 요코다 카즈오 씨가 전일본유권연맹 고문 겸 회보 '유권' 편집장인 것. taikyokuken.co.jp/goshin/story6.…
요시다 코타로 선생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려진 바가 없다. 극우파였기 때문인지 일본 웹에서도 딱히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일본유권연맹의 지비키 선생 인터뷰 외에 검색되는 바가 없다시피 하고, 오히려 영문 위키나 스탠리 프래닌 선생이 만든 아이키도 백과 같은 영문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다.
주로 알려진 내용은 1. 흑룡회나 현양사 같은 극우조직 멤버였다(고 하는데, 사실은 멤버까지는 아니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상당히 우익 성향이긴 했던 듯하다) 2. 북해도신문 편집장이었으며 작가였다 3. 타케다 소카쿠에게 많은 학생을 소개했으며 그 중에 우에시바 모리헤이도 있었다
4. 극진가라테 창시자 오야마 마스타츠(최영의)에게 대동류를 가르쳤다 (하지만 실제로 가르친 것은 지팡이술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발행한 목록은 '요시다식 지팡이술'이었음) 그리고 콘도 카츠유키 선생도 처음 대동류 입문은 요시다 코타로에게 했다.
최영의는 이후 "대동류의 아테미는 숏펀치다"라고 말한 바 있다 5.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하와이 주재 무술가 리차드 킴은 최용술이 요시다 코타로의 제자였다고 증언하는 편지를 블랙벨트지에 기고한 바 있다. (리차드 킴도 한국계라고 알려져 있으나, 오키나와계라는 얘기도 있다)
6. 그의 아들 요시다 켄지는 미국으로 건너가 '야나기류(합기)유술'라는 이름으로 무술을 가르쳤다. 7. 사가와 유키요시는 요시다 코타로에 대해 마츠다 토시미 등과 함께 타케다 소카쿠 선생의 오래된 제자 중 하나이지만 가난해서 비전목록이나 교수대리 자격은 상당히 늦게 받은 편이라고 했다.
또한 초기 제자로서 타케다 소카쿠 선생의 순업에 조수로서 동행하는 일이 많았고, 타케다 선생의 수리검 일화 등도 요시다 선생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8. 지비키 선생의 인터뷰나 영문 위키에 따르면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언제나 철선을 휴대하고 다녔다고 한다.